육아는 돕는 것이 아니다
- 일상
- 2018. 10. 17.
육아는 돕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고향이 지방이라 기숙사 생활을 많이 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 후 계속 타향에서 생활을 했으니까. 보통 대부분의 대학교, 대학원 등 군대 내무반을 제외하고 단체 생활하는 기숙사는 2인 1실이다. 들어보면 방을 같이 쓰는 룸메이트끼리 무척 친한사이도 있고, 적이되어 뒷담화만 하는 사이도 있고, 또 친한척만 하는 사이도 있다. 나는 친한척 지냈던 부류인 것 같다. 가족처럼 살갑지는 않더라도, 각자의 프라이버시는 존중해주면서, 그렇다고 사이가 나쁘지도 않고 적당히 개인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평화롭게 지냈던 것 같다. 나는 평화주의자다. 그래서 기숙사 생활이 아주 힘들지만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보기도 하고 실컷 잠을 자기도하고, 룸메이트가 있지만 보이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있어 아늑하게 지냈다. 물론 원룸을 혼자 쓰는 것이 마음편할 수 있겠지만, 자취를 했을 때는 내 생활이 제어가 되지 않아 폐인이 되기 일쑤였다.
군대 생활도 그럭저럭 무난히 했기 때문에, 주변의 이성 후배들이나 이성 동기들에게, 또 그들이 결혼 적령기라면, 나는 배우자를 고를때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곤 했다. 그것은 단체생활을 할 때 상대방의 태도를 보라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것은 서로다른 인생을 살아온, 적어도 20년 이상의 다른 경험을 했던 사람 2명이 같이 살아가는 일이다. 얼마나 이질적인가. 따라서 누군가 "나는 기숙사 생활은 죽어도 못하겠어.", "나는 무조건 자취만 해야해", "군대에서 정말 힘들었어, 최악이야" 라고 부르짖는다면 배우자로서 좋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었다. 군대도 사람들이 지내는 곳이고, 더구나 2년을 내집처럼 지내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은 다 적응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룸메이트 한 명, 혹은 내무반 동료들과 잦은 트러블이 생긴다면, 결혼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로 트러블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나는 결혼생활을 하면 매우 잘 할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사람들과 무난히 지냈었고, 개인적으로 아주 소수의 특정 인물들만 제외하면, 나는 누구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깊이는 깊지 않겠지만, 누구에게나 웃으며 잘 대해줄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3년전 결혼을 했고, 2년전 아들이 태어난 후 나는 많이 달라졌다. 룸메이트와 살 때처럼, "내 일은 내가하고, 네일은 네가 해라.", "나도 너를 간섭하지 않을 테니, 너도 나를 간섭하지 말라" 이러한 태도는 결혼생활에서 통하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지만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육아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났다. 육아는 참 힘든 일이다. 정말 눈물이 날만큼 힘들다. 내일 아침일찍 출근해야 하고, 회사에서 힘든 업무가 뻔히 예상되는 날, 잠이라도 푹 자고싶은데, 1시간마다 깨어나 칭얼대는 아기와 같이 있을 때는 정말 소리없이 울고만 싶다. 맞벌이 부부지만, 육아는 자연스럽게 아내의 비중이 컸다. 그래서인지 육아에 있어 나는 "내가 많이 도와줘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것부터가 육아는 네 일이라는 반증이 된다. 나는 내 일만 할께, 하지만 나는 좋은 남편이니 여유가 생길 때 네 일인 육아를 조금 도와줄게.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 아내와 사소한 일로 자주 싸울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칼같이 억지로 퇴근해서 어린이집에서 아이 하원을 시키는 아내의 고달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아 그 일 어떡하지?" 하고 외치는 아내를 바라본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칼퇴를 하느라 미처 깜빡하고 못했던 일이 생각난 것이다. 회사가 멀어 내가 하원을 시키지는 못하지만, 뒤늦게 들어가서 육아를 돕는 것이 아니라 육아를 한다. 당연한 나의 몫이다. 그 동안 아내는 잠깐동안 여유를 갖는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한다거나, 카톡을 한다거나, 잠깐 누워있는다. 그 때 비로소 혼자의 자유를 누린다. 만약 아이가 아내와 있으면 집안일을 한다. 약간 오버해서 집안일을 하는 티를 팍팍낸다. 분명 둘이지만 아내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해서다.
끝.
2018. 10. 17 - S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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