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누가 나서서 도와줄까?


이제 누가 나서서 도와줄까?




  올해 여름에 30대 여교사가 봉침을 맞고 사망한 일이 발생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더라도 건강한 사람이 봉침을 맞은 후 갑자기 상황이 발생한 것을 보면 아나필락시스로 인한 쇼크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응급실에서 아나필락시스 환자들은 비교적 흔히 볼 수 있으며, 응급실로 온 아나필락시스로 환자 중에 대부분은 초기 치료만 잘 되었다면 큰 문제없이 회복하여 정상적인 모습으로 걸어서 퇴원하기에, 위 사건은 더욱 안타까웠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건이 발생하자 한의사는 같은 건물 가정의학과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결과적으로 가정의학과 의사 또한 고소를 당해 9억원 정도의 민사재판에서 피소되었다고 한다. 물론 의사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아나필락시스이지만, 이제 누가 도와달라고 하면 참 도와주기가 껄끄러운 현실이 되었다.




  얼마전 참석했던 민방위 교육에서도 응급 조치로서 심폐소생술을 교육하고 직접 실습도 해보는 기회가 있었다. 그 강사는 누가 쓰러져 있다면 주저없이 흉부 압박을 시행하라고 하였다. 단, 보호자가 있다면 허락을 구해야 하며, 거의 대부분의 보호자는 심폐소생술을 허락할 것이라고 하였다. 착한 사마리안 법이 있으니,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결과적으로 잘못되거나, 다른 합병증이 발생하였더라도 잘못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심폐소생술을 많이 해보았던 필자의 경우도 만일 길을 지나가다가 누군가 쓰러져 있는데, 주변에 보호자가 있을 경우 과연 주저없이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비행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행기에서 아픈 승객이 있을 때, 도와줬던 의사 중에 결과가 잘못되었을 때 소송에 휘말린 사례를 수도 없이 들어왔다. 이제 비행기에서도 "승객 중에 의사분 계신가요?" 라고 기내 방송이 나왔을 때, 누가 손을 돌고, "내가 의사입니다." 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대학병원의 입원 병동 주치의로 근무하는 전공의들의 경우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를 퇴근 시간 이 후에 (본인은 '오프'임에도 불구하고 - 여기서 오프라는 것은 퇴근을 의미한다. 당직이 아니면 오프라고 표현한다. 만약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가 정규 근무시간이고, 본인이 오프라면 저녁 6시에 퇴근하여 다음날 6시에 근무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그 날 입원하는 환자는 보통 오후 3시~4시 정도에 입원하게되고, 입원환자의 병력청취 및 혈액검사 및 기본검사 결과까지 확인하려면 저녁 8시는 훌쩍 넘는다. 아침 6시부터 근무 시작이라고 하면, 보통 새벽 4~5시에는 복귀하여 회진 준비를 해야한다. 그래도 오프라서 좋은 거다. 설사 집에 못가고 병원에 남아있더라도 당직콜이 없으니 좋다. 일이 남아있더라도 당직콜 없이 마음편하게 잔업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오프다.) 남아 끝까지 치료를 한 후에 그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할 때 아주 큰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전공의들의 낭만은 많이 사라져가고 있다.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고생한 전공의에게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누가 탓할 수 있으랴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공의들은 환자의 치료를 위해 여러 자료를 찾고 여러가지 가능성들을 고민하고 생각하는 대신, 혹시나 발생할 소송에 대비하여 본인을 방어하기 위한 의무기록을 열심히 작성한다. 전공의 입장에서는 병원 및 해당 주치의의 법적인 방어를 위한 기록을 남겨야 하고, 그렇게 하도록 지속적으로 강요를 받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허무하고 허탈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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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또한 전공의 시절에 다른 과 전공의에게 특정 술기를 부탁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술기는 개인적으로 자신 있는 술기여서 흔쾌히 도와주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지도교수님은 만일 시술 후 합병증이라도 발생할 경우 책임을 물을 수 있으니, 절대 도와주지 말라고 하셨다. 이렇듯 방어진료는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때로는 너무 몸을 사리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몸 편하고 사고 안나는 과가 인기과가 되고, 중증 환자 위주의 사고나기 쉽상인 내과, 외과는 이제 비인기과가 되어버렸다.


  봉침으로 사망한 여교사 사건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하고, 대비해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도움을 주려고 달려온 가정의학과 의사에게도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정의학과 의사 입장에서는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청하는 한의사를 애써 모른체 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점점 차가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끝.
2018-11-22 오후 8:32 - S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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