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 해독
다음 문자들은 무엇일까?
정답은 응급실에 온 환자의 혈액검사 결과이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너무 복잡해보여 마치 암호문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뜻 보면, 의미없는 문자들의 나열 같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힘들어하는 환자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 사람의 몸은 어떻게 해서든 혈액의 pH 를 7.4 에 맞추려는 본능이 있다. 죽어가는 사람의 혈액을 조사해보면 pH 7.0, 6.9 등 산성화 되어 있다. 몸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이 사람도 pH 가 7.0 이다. 매우 낮다. 백혈구, 빈혈수치, 혈소판 수치 등을 보면 탈수가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나트륨 수치는 138 이지만, 혈당이 778로 매우 높으므로, 아마도 진짜 나트륨 수치는 더 높을 것이다. 그런데 Chloride 는 98 로 좀 적은편이다. 이상하다. 그리도 매우 이상한 것은 혈당이 778, 당화혈색소가 10.7로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 환자는 당뇨병성 케톤산증 환자이다. 진단이 나왔으니, 치료를 하면 된다.
환자는 본인의 말로, 혹은 혈액검사, X-ray 등으로 자신의 병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 내는 것이 의사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천재적인 의사는 환자를 보지 않고 검사결과만 보고 진단을 해낼 수 도 있겠지만 실제 임상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고 환자를 직접 보았을 때 얻는 정보가 참 많다.
예를 들어 검사 결과가 너무 이상해서 아마 복용 중인 이뇨제 때문에 그랬을 것으로 추정되는 분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투여한 약의 용량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량이고, 많은 용량이 아니어서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환자를 실제 만나보니 의문이 해결되었다. 체중이 28kg 이었던 것이다.
한편 장이 폐색되어 괴사가 진행되어 대사성 산증이 생기고, 동시에 심한 구토로 인해 대사성 알칼리증이 생길 경우 혈액의 pH 는 7.4 에 근접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환자는 매우 위중한 상태이므로, 환자의 모습을 보았다면 pH 7.4 라고 할지라도 이상하다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의사는 똑똑할 필요가 없다. IQ 는 의사의 필수 요건이 절대 아니다. 머리 좋은 의사보다는 환자를 자주 찾아가서 보고 진료하고, 그리고 그 병에 대해 고민하는 부지런한 의사, 성실한 의사가 더 중요한 덕목인 것 같다.
오늘도 환자는 본인의 상태를 검사결과로 이야기 해준다. 암호문 같은 내용이지만 절대 검사결과만으로 환자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암호 해독의 중요한 포인트는 환자를 자주 찾아가 만나보는 것이다.
끝.
2018. 11. 18 - S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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